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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음악 미술 문화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시모음, 농무(農舞),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떠도는 자의 노래, 역전 사진관집 이층

by 김무야호X호 2024. 5. 22.

목차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시모음, 농무(農舞),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떠도는 자의 노래, 역전 사진관집 이층

    '가난한 사랑노래'신경림 시인은 그의 시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 사회의 부조리, 자연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들 중 일부를 살펴보면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와 시적 세계를 탐구해 보겠습니다.

    가난한 사랑노래 - 신경림 시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농무(農舞) - 신경림 시

    ‘농무(農舞)‘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 신경림 시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솜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그림

    그림‘ - 신경림 시

    옛사람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배낭을 멘 채 시적시적
    걸어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주막집도 들어가보고
    색시들 수놓는 골방문도 열어보고
    대장간에서 풀무질도 해보고
    그러다가 아예 나오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떨까
    옛사람의 그림 속에
    갇혀버리면 어떨까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내가 오늘의 그림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나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두드려도 발버둥쳐도
    문도 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의 그림에서
    빠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배낭을 메고 밤차에 앉아
    지구 밖으로 훌쩍
    떨어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옛사람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시입니다. 배낭을 메고 걸어 들어가 주막집과 골방을 탐험하고 싶다는 소망은,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잘 나타냅니다. 오늘의 그림 속에 갇혀 있다는 깨달음은, 우리의 삶도 결국 하나의 그림일 뿐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장난 사진기

    ‘고장난 사진기‘ - 신경림 시

    나는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보이는 것은 모두 찍어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도 찍히고 바라지 않는 것도 찍는다
    현상해보면 늘 바라던 것만이 나와 있어 나는 안심한다
    바라지 않던 것이 보인 것은 환시였다고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 사진기는
    내가 바라는 것만을 찍어주는 고장난 사진기였음을
    한동안 당황하고 주저하지만
    그래도 그 사진기를 나는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닌다

    고장난 사진기여서 오히려 안심하면서

    고장난 사진기를 통해, 우리의 시각과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편향적인지를 나타냅니다. 내가 바라던 것만을 찍어내는 사진기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이는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주관적이며,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역전 사진관집 이층 - 신경림 시

    ‘역전 사진관집 이층‘

    사진관집 이층에 하숙을 하고 싶었다.
    한밤에도 덜커덩덜커덩 기차가 지나가는 사진관에서
    낙타와 고래를 동무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무 때나 나와 기차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갈 수 있는,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을 그 먼 곳에 갈 수 있는,
    어렸을 때 나는 역전 그 이층에 하숙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꿈이 이루어져 비행기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다녀봤지만, 나는 지금 다시
    그 삐걱대는 다락방에 가 머물고 싶다.
    아주 먼 데서 찾아왔을 그 사람과 함께 누워서
    덜컹대는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 소리를 듣고 싶다.
    낙타와 고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

    다락방을 나와 함께 기차를 타고 싶다.
    그 사람이 날 찾아온 길을 되짚어가면서
    어두운 그늘에도 젖고 눈부신 햇살도 쬐고 싶다.
    그 사람의 지난 세월 속에 들어가
    젖은 머리칼에 어른대는 달빛을 보고 싶다.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날을
    다시 그 삐걱대는 사진관집 이층에 가 머물고 싶다.

    갈대 - 신경림 시

    ‘갈대’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요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의 시 '갈대'는 인생의 고통과 슬픔을 갈대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입니다. 갈대가 바람이나 달빛이 아닌 자신의 조용한 울음으로 흔들린다는 점은, 인간이 겪는 내면의 고통과 슬픔이 외부의 영향 때문이 아닌, 스스로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많은 울음을 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돌 하나, 꽃 한 송이

    ‘돌 하나, 꽃 한 송이‘ - 신경림 시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이 시에서는 꽃과 돌을 통해 인간의 삶과 그 속에서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비구와 농투성이, 그리고 주모와의 일화들은 시인의 다채로운 삶의 경험을 반영하며, 세상의 돌처럼 버려질까 두려워하면서도 꽃으로 피어나기를 꿈꾸는 인간의 본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상에 새롭지 않은 것은 없다

    ‘지상에 새롭지 않은 것은 없다‘

    이사할 적에는 새 바람 새 빛을 바랐나보다.
    그래서 나는 실망한다. 십칠년 만에 이사한 동네가
    옛날에 떠났던 바로 그 동네여서.
    그래도 반가워서 이 언덕 저 골목 서성이는데
    놀랍구나, 모든 게 이렇게 새롭다니.

    아기들이 새롭다, 연립주택 낡은 문을 밀고 나오는.
    젊은 엄마들이 새롭다, 뒤따라 나오는 헐렁한 옷 속의.
    그루터기가 새롭다, 가지 잘린 플라타너스의.
    간판이 새롭다, 새로 단장한 머리방의.

    새롭지 않은 것은 오직, 오래되고 낡은 것들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걷는 내 걸음뿐.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신선한 감정과, 그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결국 모든 것이 새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자신의 걸음만이 새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이는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시인의 성찰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그늘

    ‘아버지의 그늘‘ - 신경림 시

    특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겨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반감을 가지고 자라온 시인의 내면을 그린 이 시는, 결국 아버지의 나이에 이르러 자신도 아버지와 닮아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세대 간의 연결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4월 19일, 시골에 와서

    ‘4월 19일, 시골에 와서‘ - 신경림 시

    밤새워 문짝이 덜컹대고
    골목을 축축한 바람이 쓸고 있다.
    헐린 담장에 어수선한 두엄더미 우에
    살구꽃이 피고 어지럽게
    피어서 꺾이고 밟히고
    그래도 다시 피는 4월.

    나는 남한강 상류 외진 읍내에 와서
    통금도 없는 빈 거리를 헤매면서
    어느새 잊어버린
    그날의 함성을 생각했다.
    티끌처럼 쏠리며 살아온 나날.
    돌처럼 뒹굴며 이어온 세월.

    다시 그날의 종소리가 들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밤은 어두웠다.
    친구를 생각했다. 찬 돌에 이마를 대고
    깊은 잠이 들었을 친구를
    그 손톱에 배었을 핏자국을.

    4월이 와도 바람은 그냥 차고
    살구꽃이 피어도 흐느낌은 더 높은데
    축축한 바람은 꽃가지에 와 매달려
    친구들의 울음처럼 잉잉댔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피고
    꺾이고 밟히고 다시 피는 4월
    밤은 좀체 밝아오지 않았다.

    이 시는 4.19 혁명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를 표현합니다. 헐린 담장과 피고 꺾이고 밟히는 살구꽃의 이미지를 통해, 혁명의 열망과 그로 인한 희생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또한 시인은 친구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다시 그날의 종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석양 비낀 산길을.
    땅거미 속에 긴 그림자를 묻으면서.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콧노래 부르는 것도 좋을 게다.
    지나고 보면 한결같이 빛 바랜 수채화 같은 것.
    거리를 메우고 도시에 넘치던 함성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굳게 잡았던 손들도.
    모두가 살갗에 묻은 가벼운 티끌 같은 것.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도.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그것들 모두 땅거미 속에 묻으면서.
    내가 스쳐온 모든 것들을 묻으면서.
    마침내 나 스스로 그 속에 묻히면서.
    집으로 가는 석양 비낀 산길을.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뒤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표현합니다. 빛 바랜 수채화처럼 흐려진 과거의 기억들을 잊고, 땅거미 속에 묻으며, 석양이 비치는 산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인생의 모든 무거움을 내려놓고자 하는 시인의 바람을 잘 나타냅니다.

    떠도는 자의 노래

    ‘떠도는 자의 노래‘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이 시는 무엇인가를 놓고 왔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시인의 모습을 그립니다.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에서도 무엇인가를 놓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점은 인생의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불안감을 나타냅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헤매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 소리는 어디에서

    ‘저 소리는 어디에서‘

    다리도 못 펴고 누워 있는 초췌한 몸 속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미라가 다 되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육신 속에서 나
    오는 소리가 아니다
    이승과의 인연을 외면하여 밀폐된 검은 관 속에서 나
    오는 소리가 아니다
    드디어 뗏장이 입혀진 어둡고 축축한 무덤 속에서 나
    오는 소리가 아니다
    나비가 떼지어 나는 소리도 함께 들리는
    가지각색 꽃들의 빛깔과 향기도 따라 보이는

    "어머니"부르면 "그래" 대답하는 저 맑고 담담한 소
    리는

    이 시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소리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고찰하며, 결국 어머니의 맑고 담담한 소리가 가장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소중한 소리가 우리 삶에 큰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녀네 집이 멀어서

    ‘그녀네 집이 멀어서‘

    그녀네 집이 멀어서
    북적대는 시게전을 지나야 한다
    골목을 벗어나면 언덕이 있고
    싸리울 하얀 꽃 속에 그녀는 산다
    방은 늘 비어 있어 어른대는
    살구꽃에 취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꽃 그림자가 방문을 덮는다
    그녀네 집이 너무 멀어서
    물 머금은 보름달을 등에 지고
    내려오는 길은 더욱 멀다
    골목을 벗어나고 시게전을 지나서
    외진 모퉁이 들여다보면
    꼬치집에도 그녀는 없다
    기다리며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나는 잊는다 그녀의 얼굴을
    체취를 잊고 이름을 잊는다
    그녀네 집에 멀어서

    시게전을 잊고 유행가가 자욱한 골목을 잊고
    싸리울 하얀 빈 방을 잊고 비릿한 이불자락을 잊고.....
    당초부터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를
    그녀네 집이 너무 멀어서.

    사랑하는 이와의 거리감과 그로 인한 상실감을 표현한 시입니다. 북적대는 시게전과 유행가가 자욱한 골목을 지나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녀를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시인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인간 관계의 복잡성과 그 속에서 느끼는 고독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

    ‘우리의 소원‘

    나의 소원은 따끈한 밥 한 그릇
    어머니와 함께 할 따끈한 밥 한 그릇
    나의 소원은 전세방 한 칸
    잠도 자고 꿈도 꿀 작은 방 하나
    나의 소원은 편안한 하루
    언니 오빠 함께 쉴 조용한 하루
    나의 소원은 아늑한 일터
    눈 부라리는 이 없는 화목한 일터
    노래하며 함께 일할 정다운 동무
    말하지 말라 모두들 네 편이라고
    신문에 실릴 이름 석자 위해
    족보에 오를 서푼짜리 벼슬을 위해
    거짓웃음으로 턱이 굳어 있으면서
    자기 아들딸만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가족만의 안녕을 위해서
    모두 잠든 밤에 홀로 한숨 쉬면서
    우리의 소원은 따스한 나라
    네 꿈 내 꿈 이루게 할 즐거운 나라
    우리의 소원은 밝은 세상
    속임수 안 통하는 신나는 세상.

    '우리의 소원'은 단순하고 평범한 소원을 통해 인간의 바람과 희망을 표현합니다. 따끈한 밥 한 그릇, 전세방 한 칸, 편안한 하루, 아늑한 일터 등은 모두 우리 삶의 작은 행복을 상징합니다. 이는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행복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더딘 느티나무

    ‘더딘 느티나무‘

    할아버지는 두루마기에 지팡이를 짚고
    훠이훠이 바람처럼 팔도를 도는 것이 꿈이었다
    집에서 장터까지 장터에서 집까지 비칠걸음을 치다가
    느티나무 한그루를 심고 개울을 건너가 묻혔다
    할머니는 산을 넘어 대처로 나가 살겠노라 노래삼았다
    가마솥을 장터까지 끌고 나가 틀국수집을 하다가
    느티나무가 다섯자쯤 자라자 할아버지 곁에 가 묻혔다
    아버지는 큰돈을 잡겠다며 늘 허황했다
    광산으로 험한 장사로 노다지를 찾아 허둥댄 끝에
    안양 비산리 산비알집에 중풍으로 쓰러져 앓다가
    터덜대는 장의차에 실려 할아버지 발치에 가 누웠다
    그 사이 느티나무는 겨우 또 다섯자가 자랐다
    내 꿈은 좁아빠진 느티나무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을 건너 산을 넘어 한껏 내달려 스스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런 자신이 늘 대견하고 흐뭇했다
    하지만 나도 마침내 산을 넘어 강을 건너 하릴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 발치에 가 묻힐 때가 되었다
    나는 그것이 싫어 들입다 내달리지만
    느티나무는 참 더디게도 자란다

    더디게 자라는 느티나무를 통해, 인생의 느리고도 힘든 여정을 표현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삶과 그들의 꿈을 이어받아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은, 느티나무가 더디게 자라듯이 우리 삶도 더디고 어렵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아가고, 결국에는 삶의 끝에 도달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소장수 신정섭씨

    ’소장수 신정섭씨‘

    영흥도에서 만난 소장수 신정섭씨는
    꼭 세 마디만 가지고 소를 몬다
    고삐 당겨 이랴이랴로 끌고
    딴 곳으로 가려는 소 어뎌어뎌로 막고
    힘들어 숨차하면 워워로 세운다
    소장수 신정섭씨는 뭐든지 다 안다
    소 눈만 끔뻑해도 가려운 데 어덴 줄 알고
    귀만 쫑긋해도 아픈 데 어덴 줄 안다
    소 몰고 가는 길 어데쯤
    도랑이 있고 돌이 박힌 것도 훤히 알고
    길에서 만나는 남의 소 나이며
    성질까지도 담박 안다
    그래서 소장수 신정섭씨는 세 마디만 가지고
    세상을 몰겠다는 사람들이 밉다
    백성의 어데가 아프고
    어데가 가려운 줄도 모르면서
    이랴이랴로 끌고 어뎌어뎌로만 다스리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밉다 못해 가엾다
    어디에 물이 있고
    어디에 불이 있는 줄도 모르면서
    워워로만 막으려는 사람들이
    가엾다 못해 불쌍하다
    세 마디만 가지고 세상을 몰려다가
    물고문 불고문으로 사람을 잡고
    몽둥이질 발길질로 나라를 잡고
    마침내 성고문으로 스스로 짐승이 된
    얼빠진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뭐든지 아는 소장수 신정섭씨는
    그 아들딸까지 모조리 잡아다가
    한 백 년쯤 소장수를 시키고 싶다
    여름 겨울 없이 섬을 떠도는
    한 천 년쯤 소장수를 시키고 싶다
    단 세 마디로 거꾸로 소한테 끌려다니는
    순하디순한 소가 되게 하고 싶다
    이랴이랴 어뎌어뎌 워워 세 마디로 소를 몰면서.

    소장수 신정섭씨의 삶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꼬집고 있습니다. 소의 눈과 귀만 보고도 소의 상태를 알아채는 신정섭씨의 능력은, 진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아픔과 가려움을 알고 이해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이는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다스리려는 이들을 향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는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감정과 생각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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